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저는 남복이 참 없습니다.
물론 이곳에서의 만남이 지속되기가 어렵다는 것은
오래 몸담아 왔기에 잘 알고 있습니다.
그러나 애써 평범한 여대생인척하며 살아가는 현실에서조차도
만남의 지속이 참 어렵습니다.
정을 한 번에 쏟아버리는 타입이라
유혹에 넘어가기 전에는 도도한 여우지만
교제를 시작하면 곰이 되어 버리고 맙니다.
한 가지 특징은
이곳에서든 현실에서든 제가 만나는 남성들은
저를 만나기 시작하면
어딘가 떠날 일이 생기고 열심히 살아야 할 일이 생기며 돈도 궁해진다는 것입니다.
큰 사고로 폐차를 시키며
공부에 관심도 없던 친구가 최우수장학생이 되며
외국으로 유학을 떠나며
하던 사업이 어려워지며..
하염 없이 믿고 바라바주는 제겐
이제 떡밥 던질 필요가 없어서 하는 핑계일 수도 있겠죠.
참 감수성도 깊어서 길거리 풍경에도 감격해서 눈물을 흘리곤 했지만
어느새부터인지 가슴이 메말라갑니다.
아니, 제가 더욱 무덤덤해지려 노력하지요.
아름다운 사랑 같은 건 바라지도 않고
이곳에서 받은 도움으로
다른 곳에 도움을 베풉니다.
사치스럽지가 못해서
돈이 생겨도 돈도 잘 못씁니다.
여전히 만원짜리 가방을 메고 다니며,
파우치에 돈을 넣고 다니며,
천원짜리 매니큐어를 사다 바릅니다.
그렇지만 부담 없이 병원을 다닐 수 있고
매일 매일 먹어야하던 약을 처방받을 수 있고
제가 꼭 접종해야 했었던 수십만원짜리 백신도 맞을 수 있습니다.
친구들과 식사 후에 커피 내기도 흔쾌히 할 수 있다는 것에도 기쁩니다.
매달 아버지의 회색빛깔 머리를 제가 직접 염색해드릴 수 있다는 것도 기쁩니다.
다음 주 수능을 앞둔 동생에게 따뜻한 기모후드와 바지를 선물해 줄 수 있다는 것에 기쁩니다.
샘플을 모아 쓰는 어머니에게 스킨, 로션을 선물해드릴 수 있다는 것이 기쁩니다.
매달 유니세프에서 아우인형을 입양할 수 있다는 것에 기쁩니다.
아름다운 사랑, 설레임은 포기하고
소소한 일상에서 찾아오는 행복을 느끼던 차에
오늘 한 분을 만나게 됩니다.
오랜 기간 이야기를 나누었는데
참 바다 같은 분이란 느낌이 듭니다.
이번에는 오래 뵐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에
조금 설레어옵니다.
오늘 저녁 꼭 좋은 후기를 남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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